오는 2025년 사용종료를 앞두고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수도권매립지가 도시 한복판에서 기름을 퍼올리는 ‘도시유전(油田)’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보인다. 한강과 서해를 연결하는 경인아라뱃길 북측에 있는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는 서울 난지도매립지(현 서울 상암동 노을공원·하늘공원)를 대체할 목적으로 1987년 조성돼 1992년부터 쓰레기를 받기 시작한 곳. 한데 서울·인천·경기 등 인구 2600만명 수도권의 각종 쓰레기를 받아내던 수도권매립지는 박남춘 전 인천시장이 “2025년 매립종료”를 선언하면서 비상등이 켜졌었다.
수도권매립지 문제는 지난 6·1지방선거 때도 ‘매립지 사용종료’의 정확한 시점을 두고 초미의 쟁점으로 떠올랐었다. 지난 7월 1일 인천시장으로 재복귀한 유정복 인천시장 역시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확인한 상태다. 이에 대체매립지 등을 조속히 확보하지 않으면 국내 인구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이 악취와 오물로 뒤덮일 것이란 우려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한데 수도권매립지 한 귀퉁이에서 현재 실증사업 단계를 밟고 있는 ‘도시유전’ 설비가 ‘구세주’로 떠오른 것이다.
생활쓰레기 기름으로 환수
지난 7월 11일 찾아간 인천 서구 자원순환로의 수도권매립지. 18홀 규모의 골프장(드림파크CC)으로 탈바꿈한 수도권매립지 1단계 사업장 인근에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 상용화 실증 및 공정연구개발’이란 간판을 붙인 공장이 보였다. 셔터문을 올리고 들어가자 공장 한복판에는 성인 키 2배가 넘는 직경을 가진 육중한 원통형 탱크가 뉘어져 있었고, 탱크는 다시 뒤쪽의 크고 작은 탱크들과 관로로 연결돼 있었다. 탱크 주위에서는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을 때나 맡을 수 있는 석유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렀다.
이 장치는 ‘도시유전’이란 국내 벤처기업이 2020년 수도권매립지를 관리하는 환경부 산하 공기업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와 함께 설치한 설비다.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하고 특허등록한 세라믹볼 파동분해 기술을 이용해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등이 섞인 폐기물을 270℃ 내외의 탱크에서 분해해 기름으로 환수하는 장치다. 분류하지 않은 생활폐기물을 통째로 6t가량의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원형 탱크 속에 집어넣으면 석유를 원료로 한 폐비닐과 폐플라스틱은 분자구조가 끊어지면서 가공하기 전의 기름 상태로 되돌아가고, 이 과정에서 쓰레기 양이 대폭 줄어드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현재 수도권매립지에는 6t가량의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시범설비만 구축한 상태지만, 실제 상용화 과정에서는 6t탱크 4개가 한 세트로 설치돼 생활쓰레기를 값비싼 기름으로 되돌리게 된다. 24t(6t×4) 장치를 10세트 구축하면 240t100세트 설치하면 산술적으로 2400t의 쓰레기를 24시간 만에 기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 용량이면 하루 1만t 내외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수도권매립지는 역부족일지 몰라도, 지방 소도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정도는 현장에서 기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해당 설비가 있는 옆 공장에는 각종 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택배포장용으로 흔히 쓰는 폐비닐 뭉치를 비롯해,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일회용 마스크 부자재, 전선과 피복 등이 보이는 산업용 폐기물, 논밭에서 수거해온 농사용 비닐쓰레기, 심지어 강원도 한 지자체의 매립장에서 퍼올려왔다는 매립폐기물 등 각양각색의 쓰레기들이 즐비했다. 도시유전 측 관계자는 “상용화 연구를 위해 공급받은 쓰레기들로, 장차 기름으로 바뀔 예정”이라며 “마스크 부자재나 농사용 비닐은 회수율이 80%가 넘을 정도로 높다”고 했다.
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석유를 원료로 생산한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등을 녹여 재생유로 환수하는 이른바 ‘열분해 유화기술’은 1980년대 유럽에서부터 꾸준히 연구개발이 이뤄진 기술이다. 하지만 기존 기술은 쓰레기들을 일일이 선별해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갔다. 연료를 넣고 불을 붙여 400~500℃의 고온에서 가열해 녹여내다 보니 가공과정에서 탱크가 폭발하고 화재사고가 나는 등 위험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이 같은 방식으로 쓰레기를 소각함과 동시에 재생유를 회수하는 경기도 화성, 경남 창원, 전남 나주 등지에서는 폭발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열분해 유화기술’을 사용해 회수된 기름의 품질에도 문제가 있었다. 불순물이 섞여 있다 보니 애써 기름을 만들어놔도 금세 굳는 ‘왁스(WAX)화 현상’이 심각했던 것. 실제로 도시유전 공장에서 확인한 타사의 재생유는 둥근 병 속에 들어있었는데, 병을 세게 흔들었는데도 병 속에서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수도권매립지에 있는 설비를 사용해 만들어낸 재생유는 병을 흔드니 병 속에서 찰랑찰랑 소리가 날 정도였다. 도시유전 관계자는 “정제한 기름은 산업용으로 쓸 수 있는 경유와 등유, 플라스틱 원료로 사용되는 재생 나프타로 나온다”고 했다.
도시유전에서 사용하는 방식은 연소가 아니라, 세라믹볼의 파장을 이용해 폐비닐과 폐플라스틱만 선별적으로 기존 구조를 끊어내는 방식이다. 자연히 탱크 속에 쓰레기를 집어넣을 때 선별작업을 할 필요도 없고 이에 따른 비용부담도 없다.
가령 골판지상자 등 종이폐기물, 택배포장용 비닐, 피묻은 생리대, 음식물쓰레기 등이 잡다하게 섞여 들어가면 택배포장용 비닐과 생리대에 섞인 비닐 플라스틱류만 기름으로 되돌아오고 나머지 폐기물은 탱크 속에 고스란히 남는 구조다. 소각방식이 아니어서 잡지 같은 종이폐기물은 원통형 장치에 들어갔다 나와도 제호와 글자까지 알아볼 정도였다. 불에 태우면 잿가루로 변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지자체·정유기업들도 관심
소각하는 게 아니니 쓰레기를 태울 때 배출되는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역시 배출되지 않는다. 자연히 현재 수도권매립지에서 상용화를 앞두고 실험이 진행 중인 도시유전 기술에 국내 지자체의 쓰레기 담당공무원들도 초미의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중이다. 이미 전북 정읍과 전남 광양, 강원도 춘천 등지에서는 해당 설비를 구축하려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이들 지역은 농사용 비닐 등 폐기물 처리와 인적이 드문 폐공장에 무단투기한 쓰레기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데, 이 같은 쓰레기 처리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유전 관계자는 “추출한 기름을 경로당 보일러 난방유로 기증한 적도 있다”고 했다.
국내 굴지 정유기업들도 도시유전 기술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도시유전 측은 GS그룹의 GS칼텍스, GS건설 등과 3자 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각종 시범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면서 협업 모델도 구축한 상태다. GS건설이 지은 GS자이 아파트 단지에서 배출한 생활폐기물을 수거해 이를 초경질유로 환수한 뒤, 이를 사간 GS칼텍스에서 나프타를 뽑아내 재활용 플라스틱 도시락상자로 가공하고, GS25 편의점에서 여기에 밥과 반찬을 담아 판매하는 식이다. 일종의 자원선순환 구조를 구축한 셈. 도시유전 정영훈 대표는 “국내 사업 수행실적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라며 “특히 유럽 등지에서 관심이 높다”고 했다.

출저 : https://n.news.naver.com/article/053/0000032043?lfrom=kakao